불온한 신체

<불온한 신체>
심래정, 이은영, 조재영
2021. 10. 04 – 10. 24
화인페이퍼갤러리
<불온한 신체> 이 전시에서 말하는 ‘신체’는 단순히 인간의 몸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공간에,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만의 생존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를 일컫는다. 즉 이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물질화, 가시화하는 모든 것, 나아가 그것을 기반으로 일련의 행위들을 생산해내는 것들이다. 자신을 구현하는 방식 또 생존하는 방식, 우리는 그것을 이 신체들 각자의 ‘현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의 작가가 만들어 내는 신체들은 불온하다. 그들은 우리가 폭력적으로 규정해 놓은 정상의 범주, 그 안에 들어오기를 원치 않는다. 그 안에서 포착되는 것이 싫다. 안에서 밖으로, 수시로 이탈해가며 그곳에서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는 것에 골몰한다. 심래정의 작품은 잔인하다. 그는 나이프로 신체를 여러 차례 잘라내고, 오려낸다. 닫힌 채, 부피(mass)로만 느껴지던 신체가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오픈 된 신체로부터 우리가 숨겨놓았던, 그러나 늘 존재해 왔던 거북한 것들이 세상을 향해 나온다. 이들이 밖으로 나올 때, 그 동안 주체로 존재했던 부피로서의 신체는 자신의 주도권을 이 거북한 것들에게 넘겨준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더럽거나 혐오스러운 것들이 그렇게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심장, 뇌, 똥과 오줌이 만들어 내는 적나라한 풍경을 보면서도 우리가 불쾌한 감정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이를 묘사하는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위트 덕분이다. 더러움, 불쾌함, 유머, 위트 등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감정들이 한데 뒤섞이면서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하기 힘든 오묘함에 빠진다. 이 오묘함을 하나로 정리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그의 작업 안에서 이 여러 개의 감정들이 공평한 힘의 분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 속 여러 존재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감정들에 이미 여러 층의 서열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은영이 만들어 낸 작품은 물건인 듯 식물인 듯, 익숙한 듯 낯선 듯, 자연 속에 숨어사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근원이 모호한 이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다 보면 어딘가에 은밀한 사연이 숨어 있을 것만 같다. 그 파편적 사연들을 모아 작가는 하나의 신체로 엮어낸다. 마치 그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듯이. 그가 새롭게 엮어낸 이 신체들은 흙으로 만들어 지고 불로 구워져 박제된다. 그리하여 언제라도 부러지고 사라질 수 있는 자연 상태의 생명체가 더 강해지고 견고해지면서, 흡사 영생을 얻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도 잠시, 작가의 손을 거침으로써 이 생명체들은 영생을 얻었으나, 새로운 신체로서의 도자는 또 다시 아슬아슬하고 연약하다. 조금의 부주의 만으로 도자는 언제든 깨지고 부서질 수 있다. 부드럽고 유연한 신체로 강한 비바람에도 살아남은 자연생물이 견고하고 강해진 신체를 얻는 순간 금세 깨져 버릴 수 있는 아이러니함. 이것이 작가가 탄생시킨 새로운 생명체의 매력이 아닐까. 조재영의 작품은 여러 기하학 도형들로 구성되어 있다. 얼핏 보아 정갈할 것만 같은 기하학 도형들이 그의 작품 안에서는 조금 다르다. 그의 조각을 이루는 기하학 도형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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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것도 같은 것이 없다. 이들 조각이 구축되는 방향성에 일정한 법칙 또한 보이지 않는다. 비정형화된 도형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충동적 움직임들은 마냥 안정적일 것만 같은 신체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하는 가운데 포착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불완전한 작품 재료는 또 어떤가? 작품의 주재료인 종이는 습도와 온도에 민감하고, 쉽게 잘려지고 부서진다. 조각에 부적합한 듯 보이는 이 재료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전부를 채운다. 이는 아마도 종이라는 물성이 가진 불완전함, 변수의 가능성, 연약함 등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새로운 신체의 핵심적 특징이 아닐까. 작가는 이 특징들을 끌어안으며 계속해서 부서진 조각의 일부를 도려내고 새로운 조각을 덧붙인다. 오늘 전시장에서 만난 이 조각이 내일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