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무와 스침

“애무와 스침”
Caress and Graze
2021.09.01.-2021.09.27.
기획: 손정은
참여작가: 강은혜. 김혜숙. 양상근. 이 경
관람시간: 12:00-19:00 / 월요일 휴관
주최: 화인페이퍼 갤러리
후원: 화인페이퍼(주)

화인페이퍼 갤러리
서울 마포구 연남로 1길 30. 1층
02-335-5303
http://finepapergallery.com

“아름다움이란, 칠기의 덮개를 제거하고 국그릇을 입으로 올려 가져가는 사이에, 깊고 어두운 그릇에 담긴 정적이고 고요한 액체를 보았을 때, 칠기와 구분되지 않는 국의 색깔을 볼 때, 그 순간에 있다, 칠기의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손바닥은 느낄 수 있다, 국의 부드러운 일렁임과, 그릇 가장자리에서 방울지며 올라오는 김, 그리고 섬세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향기를...신비한 순간, 이는 거의 황홀한 순간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유하니 팔라스마, 건축과 감각. 87p). 이 글에는 일상의 단순한 행위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추상적 감각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익숙한 사물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쓸모나 기능 혹은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져 순간에 몰입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국그릇을 입으로 올려 가져가는 사이의 단 몇 초 동안 신비하고 황홀한 순간을 느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처럼 말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삶은 비참한 현실의 자각보다, 일상의 소박한 풍요로움과 미학적 경험들로 가득해질 수 있다. 

화인페이퍼 갤러리는 오는 9월 1일부터 9월 27일까지 “애무와 스침”를 개최한다. 본 전시는 강은혜, 김혜숙, 양상근, 이경 네 명의 참여 작가들이 전시공간을 자율적으로 해석하면서 서로의 작품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기획이다. 이러한 과정을 위해서는 작가들이 전시장 공간을 감각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인식하고 조율하는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애무와 스침”의 전시장소인 화인페이퍼 갤러리는 다소 낮은 천장에 건축적으로 매우 독특하게 분할되어있는 화이트큐브로서, 해석하기가 까다로운 공간이다. 놀랍게도 전시공간에서 처음 만난 작가들은 본능적으로 갤러리 공간과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해를 했고, 함께 구성할 작품들을 선정하였다. “애무와 스침”이라는 전시제목은 네 명의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텍스트나 의미의 차원”이 아니라, “감각의 차원”으로 접근하고, 조율하며 하나의 전시로 완성해가는 과정을 뜻한다. 이것은 매우 에로틱하고 고양된 감각의 상태에서만 가능한 창작과정이다.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들을 함께 섞으면서도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는 과정은 직관적인 판단에 의거하는 것이며,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가 협주를 할 때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뿐만 아니라 타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의 아름다운 곡을 완성하는 과정과도 같다. 칸딘스키가 음악을 듣고 그 감흥을 회화적 구성으로 표현한 후 Composition 이라고 제목 붙였다면, “애무와 스침”은 순수미술의 전통장르인 한국화, 서양화, 설치미술, 전통조각을 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화인페이퍼 갤러리”라는 독특한 건축적 공간 안에서 조형요소들의 composition을 통해 함께 음악적 풍경을 공감각적인 전시로 완성하는 실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장 클레 마르탱은 “애무와 스치기는 현실과 촉각 형태들을 초감각적으로 탐사하는 방식들로 유도한다”고 말한다. 애무와 스치기는 육체적 감각을 넘어선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상태의 예민함이며, 피부의 솜털과 고양이 콧수염이 감각하는 세계, 그리고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공간을 가로질러 전달되는 체온의 존재와도 같은 것이다. “손은 보기를 원하고, 눈은 애무를 원한다”는 괴테의 말이나, “댄서는 발가락에 귀가 있다”는 니체의 말과 같이, 예술가들은 창작과정에 중에 여러 감각이 관여하는 경험을 한다. 건축적 공간에 선을 통해 기하학적으로 개입하는 설치미술로 잘 알려져 있는 강은혜 작가의 작품은 보여지는 장소, 시간, 빛의 상태, 주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