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한 디지털 세계에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 중 하나는 바로 펜 하나로 찍은 작은 점도 기기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충분히 확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애초에 점인 것을 몰랐다면, 그냥 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단순하고 작은 점에서 원을, 원에서 ‘온’ 것 즉, 모두이자 전부를 보는 것이 바로 송민철의 뷰파인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총체의 유지와 변형, 계산에 의한 등가교환과 관련이 있다. 보통은 사각형 입체의 조합인 전시공간을 구의 부피로 치환했다가 이내 물이 가득 차 있던 구가 터져버리고 바닥에 물이 고이면 어느 높이가 되는지 넓은 선 혹은 얇고 긴 면으로 바뀐다.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보면 먼저 평면으로 조형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기본 요소와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모양새다. 벽면을 따라 쭉 이어지는 선 혹은 면, 가벽인지 조형물인지 헷갈리는 정면을 가로지르는 사선, 저 멀리 코너에 보이는 원형은 모두 하나의 장면으로 단편적인 감상을 준다. 그 하나의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시선에서 송민철의 뷰파인더 안으로 진입하는 것으로, 이제 그의 구성과 그 구성의 이유들에 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실재인 공간과, 공간에 내접하는 구의 부피가 원래 공간을 차지했을 높이는 관람자의 시선을 끄는 중첩된 삼각형 구조물 간의 거리를 거슬러 하나의 가로선으로 보이며, 상당한 거리감 안에서 이것은 때로 수평선까지 연상시키며 인식을 확장시킨다. 그러다 문득 코너의 거울에 내가 비치면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내가 본 것은 실체가 아니었고 거울이 비친 상(像)임을 깨닫게 되어 우리는 뷰파인더 밖으로 내쫓기고야 만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왜 이러는 거야?”라는 궁금증이 이는 것이다.
여기서 기억할 키워드는 치환된 총체들 그리고 그의 재치다.
타이틀이자 작품명 <equal in square, circle, triangle>은 캔버스 표면을 3등분한 면적을 각각 원, 삼각형, 사각형으로 치환하고, 면이 중첩되면 해당하는 면을 일종의 네거티브화 하여 제거, 중첩이 겹치면 다시 네거티브에 네거티브로 다시 색을 갖는다. 이 방식은 그의 초기작 중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2005년 작품들 <네가 그림(Negative Painting)>, <산>, <구멍> 등과도 이어지는데, 네거티브로 그림을 그린 것을 네거티브로 촬영하면 포지티브(positive)가 된다는, 일견 당연한 이야기가 시각화되는 것이다. 그림 자체는 변화했는가? 아니다. 물리적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그것은 실제로 달리 보인다. 원본 그림과 그림을 촬영한 결과물 간의 반전은 그 각각을 실재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회화와 영상으로 형식은 다르지만 서로를 긴히 요하는 사이다. 전시 작품인 <equal in square, circle, triangle>의 화면 안에서는 이 긴한 연결이 조금 흐리다. 삼각형의 빗변과 직각을 이루는 한 변이 이루는 각도는 지구의 자전축의 각도 23.5도다. 배경의 바다와 수평선은 우리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지구 표면의 경계다. 원인 지구와 생명, 물, 순환은 모두 연결고리를 갖고 작가의 작품 안에서 물리적 혹은 수학적 총체와 다른 층위에서 총체로 치환되는 것이다.
전작 중 원 위의 다섯 점을 잇고, 호와 오각형을 분리하여 설치했던 작품 <같은 다른 원1, 2>(2017), 입방체의 중심과 그 중심을 공유하는 구를 만들고, 중심을 기준으로 8등분 한 후 정육면체 각 꼭지점에 맞추어 넣은 틀 <Square Moon-origin>(2020)과 등분된 구들을 제외한 형태인 <Square Moon>(2020)도 이러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원, 오각형, 구, 정육면체의 서로 여집합을 분리하며 형태와 의미의 총체들이 층위를 달리하게 했다. 물론 이 역시 네거티브-포지티브의 관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