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은염 프로세스에 속하는, 안료를 사용하는 피그먼트 인화법(카본, 카브로, 브롬오일, 검 프린트 등) 중에서 다양한 칼라를 내기엔 검 프린트가 적합하다. 일련의 과정에서 작가들이 무엇보다 경도하는 부분은 회화와 달리, 물감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닦아내고’, 붓을 이용해 인화 과정에서 명도와 음영에 변화를 주면서 상(像)을 ‘끌어내는’ 시간이다. 회화와 정반대의 작업인데 결과적으로는 그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물에 닿았던 빛을 ‘닦아내고 문지르고 덧칠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찾아낸 ‘사물의 시간’이다. 사물(피사체)의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가 주체도 흔들리고, 어느덧 사물(인화지)을 만지고 보고 느끼고 감수성이 높아지는 시간에 이른다. 이 기법을 사랑했던 로베르 드마쉬(Robert Demach)와 콩스탕 퓌요(Constant Puyo)의 피사체가 유독 부드럽고 고요한 것은,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기까지 사진가의 손과 눈과 마음이 축적되어 이룬 고유한 세계 때문이다.
검프린트가 한창이었던 1890년대는 사진의 대중화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코닥(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은 ‘가장 작고 가벼우며 가장 간편한’ 카메라를 출시해 “여러분은 셔터만 누르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rest)”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사진 시장을 개척한다. 어린아이부터 기계를 잘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가 사진을 찍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작 직업사진가들은 코닥이 그들 사업을 방해할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보다 ‘예술적’인 사진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들의 욕망에 자연스럽게 부응한 것이 픽토리얼리즘이었다.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의 대중화로 모두가 사진을 찍고 보내고 받고 감상하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다. 사진이 대중속으로 파고들수록, 전문가는 자기만의 고유한 기법과 더 새로운 형식을 추구한다. 쉽게 탄생하고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사진이 아니라, 오래, 지속적으로, 자기 생의 시간을 살아가는 생생한 사진! 김예랑이 검프린트를 자신의 형식미로 고수하는 이유이다.
코로나, 인류세, 전쟁, 기후 위기 등 동시다발로 삶의 시간이 와해 되고 있다. 양차 대전 이후에 ‘인생무상’을 오늘날처럼 요동치듯 퍼뜨리는 시대가 있었을까? 역설적이게도, 바니타스 뒤에 곧장 삶의 축복이 따라오는가 했는데(‘카르페 디엠Carpe Diem’같은), ‘인스타와 릴스’가 등장해 우리들의 기쁜 순간을 앗아가 버린다. 어디에도 정주할 수 없고 안전하게 머물 수 없는 떠도는 이미지들. 가엾고 빈곤한 이미지가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김예랑이 그 처소를 마련한 것 같다. 검 바이크로메이트(Gum Bichromate) 프린트 속에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는 Still- Life.